1억 년 동안 다른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었을 화강암괴 지하 수백m 깊이를 달리고 있는 장대터널은, 인간의 흐름, 인간의 갈증이 지질학적 정적조차 손쉽게 깨부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묵상하는 데 그 어느 곳 보다도 훌륭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살피는 세밀한 작업에 임하기에 앞서, 먼저 이 도로 위의 혼잡 실태를, 그리고 주변 도시의 모습을 육안으로 직접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외곽순환의 서류상 기점인 판교보다는 일산 나들목에서 이 도로에 진입하려 한다. 이는 먼저, 도로공사 구간을 한 번에, 그리고 그 다음에 민자 구간을 돌기 위한 선택이다. 또한 외곽순환 남부 구간과 동시대에 생겨난 1기 신도시(4장 참조)를 한 번에 관통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일산 나들목은 일산 신도시, 나아가 고양시 전체의 중심 축선을 이루고 있는 중앙로와 접속되는 지점에 있다. 물론 서울 중심부로 향하는 차량은 4장에서 잠시 살펴본 자유로를 비롯한 여러 도로망을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굳이 외곽순환을 이용하는 차량은 분명 한강을 건너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 도로를 이용할 것이다. 하류의 일산대교까지는 8km나 떨어져 있는데다, 상류의 행주대교는 수십년 전부터 김포공항과 서울 서북부 및 고양 시가 사이의 교통을 담당하던 혼잡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한강을 건너는 김포대교부터 차량의 소통은 그리 원활하지 못하다. 그 아래로 통과하는 자유로와 외곽순환을 오가는 많은 차량 덕분에 이런 정체가 벌어질 수도 있고, 멀리 부천 구간에서 벌어진 정체가 여기까지 여파를 미쳐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방금 말한 대로 마땅한 다리가 없어서 벌어지는 정체일지도 모르겠다. 도로는 신곡수중보 바로 옆을, 그리고 강섬(백마도)을 지난다. 2017년 현재 백마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황무지, 그리고 높이 20-30m 정도에 불과한 아주 작은 잔구(殘丘)로 이뤄진 섬이다. 이 잔구 위로는 한때 병사들이 경계 근무를 섰을 허름한 초소가 보인다. 한강을 따라 올라왔을 북한의 공작원들, 그리고 하염없이 한강을 바라보며 후번초를 기다렸을 초병들,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지는 정체와 함께 몰려오는 피로를 견디고 있는 시민 수십만 명이 작은 섬에서 시간을 달리한 채 서로 엇갈리고 있다.

김포대교를 건넌 다음 서남쪽에 펼쳐지는 풍경 또한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서남측으로 내륙항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내륙항”은 dry port(1장, 의왕 및 오봉역 참조)가 아니라 물로 가득 차 있는, 말하자면 진짜 항구다. 물로 흥했던 인물인 이명박의 경인 운하가 출발하는 지점답게, 요트가 정박하는 마리나는 물론 운하 건너편에는 해운용 컨테이너를 너끈하게 들어올릴 수 있는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 두 기도 보인다. 물론 이 곳을 이용하는 선박은 요트 말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김포 평야를 통과해 남으로 내려갈 수록, 차량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그리고 이 정체가 김포 요금소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게 된다. 곧이어 거대한 방음벽과 아파트,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차량 정체 행렬이 갈 길 바쁜 여행자를 맞이한다. 중간중간 마련된 나들목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여행자는 앞으로 10km 이상 정체를 뚫고 나가야 한다. 이 정체 구간의 악명은 전국적으로 아주 높고, 특히 경인고속도로에서 나온 차량이 합류하는 서운 분기점에서 남인천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있는 장수 분기점에 이르는 대략 7km 구간의 정체는 아주 심각하다. 그림 31을 통해 이 정체가 어떤 모습인지 좀 더 분명히 확인해 보자.

https://s3-us-west-2.amazonaws.com/secure.notion-static.com/ac13a7ea-ef5e-494b-b3bb-712bfd325f86/Untitled.png

그림 31 외곽순환의 역대 통행량. 3년 단위로 표기했다. 자료는 건설기술연구원의 교통량 정보제공시스템(road.re.kr)에서.

일산에서 서운에 이르는 구간의 통행량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증가했다. 게다가 2013년 이후에는 공항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차량 덕분에 잠시 숨통을 돌릴 수 있던 노오지[3]-계양 구간조차 차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구간으로 바뀐다. 이 현상은 2013년 6월 있었던 공항고속도로 청라 IC의 개통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청라 IC 개통 이전에는 인천 본토에서 착발하는 차량이 노오지 분기점을 통해 외곽순환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외곽순환과 인천공항을 오가는 차량만이 이 분기점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쉼없이 이어지는 정체의 수준은 앞서 언급한 서운-장수구간에서는 하루 약 25만대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올라간다. 이는 심야를 제외한 18시간 평균값을 내더라도 차선당 약 1700-1800대에 달하는 막대한 물량이다. 이는 평소 시간대보다 10-20%만 더 많은 차량이 몰리면 고속도로(연속류) 교통량의 한계인 차선당 2000-2200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다[4]. 게다가 이 구간에는 다수의 나들목이 존재하며, 나들목 진출입을 위해 차량들은 반드시 차선을 넘나들 수 밖에는 없다. 이런 요인은 그대로 교통 흐름을 꼬아 놓을 수 밖에는 없다. 결국 현재의 기술, 현재의 용량으로 서운-장수 구간의 정체를 완화시킬 방법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고, 앞으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바로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이 구간의 교통량은 2010년 정점을 기록한 뒤 10%정도 감소한 상태다(그림 31). 이는 더 이상 이 도로에 의지해 삶을 꾸려가는 사람의 수가 늘지 않고, 도로의 용량은 완전히 꽉 차버렸다는 뜻일 것이다.

이 구간에 용량의 한계까지 차량이 몰려드는 이유는 도로 주변을 살펴보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운 분기점을 지난 구간부터 도로는 인천과 부천의 시가지를 그대로 돌파하기 때문이다. 이미 3장에서 언급했듯, 이 송내고가는 인천과 부천의 인공 경계선처럼 보인다. 완전히 연담되어 있는, 그리고 남북 방향 도시고속도로가 따로 갖춰져 있지 않은 두 도시의 교통량이 끝없이 밀려드는 이 구간에는, 고속도로 진입을 통제하는 신호등까지 설치되어 있다(중동 IC, 2007년 이후)[5]. 물론 이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기하학적으로 통행량을 조절할 능력이 없는 교차로라는 문제 때문에 검토되었을 해결책이지만, 외곽순환 부천 구간의 정체가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인지를 아주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 만은 분명하다.

이 고가 아래쪽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서는 화재 사고가 일어나(2010년 12월 13일) 고가 구조물이 훼손되어 재건축을 벌였던 기록도 있고, 송내 나들목을 지나면 그 아래로는 경인선 송내역을 지하로 통과해 중동신도시 중심부로 연결되는 무네미로가 함께 달리기도 한다. 복층으로 된, 그리고 두 층 모두가 기본적으로 연속류인 16차선 대로는 수도권 서부에서 가장 거대한 도로다. 양 도로를 통과하는 차량은 2016년 현재 도합 33만 대에 달한다.[6] 이 수치는 이 책에서 앞서 보았던 모든 도로를 압도하는 수준이며, 7호선 때문에 규모가 줄어든 13년 이후 경인선 최대 혼잡 구간의 통행인원(3장 그림)과 비슷하다. 도로와 차량에서 나온 회색 먼지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덮어버린 무네미길을 달리다 보면, 그리고 16차선 대로를 수천 대의 차량이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보면, 자동차가 지난 수십년간 일으킨 변화에,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자유로운 이동을 향한 인간의 갈증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무네미길과 외곽순환이 서로 헤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향하는 지점인 장수 IC 앞에는, 남부 인천과 영동고속도로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차량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IC로 가까이 갈수록, 차량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줄을 선다. 하루에 8만 대가 넘는 차량이 장수 IC를 들락거리는 만큼, 이 곳을 통과하고 나면 정체는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대편으로는 장수IC에서 합류하는 차량의 흐름 덕분에 심각한 정체가 눈에 띄지만, 이쪽 역시 김포를 통과하면서 반대편의 원활한 모습을 많이 확인한 만큼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는 불균형일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도로를 거의 10m 높이로 둘러싼 방음벽과도 잠시 헤어질 수 있다. 제법 산 같은 산이 도로 주변에 보이고, 시골 마을과 농지도 눈에 들어온다. 소래터널을 통과하면 이제 시흥이다.

시흥 일대를 통과하는 여행자라면, 시야 범위에만 수십 개의 송전탑이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수 IC 직후 구간에서는 아예 송전탑과 도로가 함께 달리기도 한다. 물론 수도권에서 가장 유명하고 장대한 송전탑 구간은 영흥화력에서 시화로 연결되는 수상 노선이지만, 외곽순환을 달리면서 시흥시 전역에 송전탑이 가득한 모습을 보는 것은 수상을 달리는 노선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7]. 영흥화력에서 온, 그리고 충청도의 여러 화전에서 출발한 전기를 수도권 서부의 각 변전소로 연결시켜주는 여러 노선의 송전망은 시흥을 이리저리 관통하고 있고, 야트막한 산기슭을 따라 진행하는 외곽순환은 산봉우리마다 솟아 있는 송전탑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노선이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수많은 가건물들이 송전탑과 함께 차창 밖으로 펼쳐진 모습은, 2018년 현재에도 규모있는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난개발”이라고 불릴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시흥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2017년 11에 개통된 공중 휴게소, 이 휴게소 부근의 거대한 방음벽을 지나면, 그리고 서해안고속도로와 교차하는 조남 분기점에 접근해 갈수록, 주변 차량은 점점 늘어나고 차량의 속도 또한 조금씩 느려진다. 시흥과 동남부 인천에서 접근해 온 차량들이 이들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차량들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시흥 나들목에서 조남 분기점에 이르는 구간은 주변에 비해 교통 정체가 덜한 편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은 그림 31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간의 교통량은 주변에 비해 상당히 적고, 고양이나 성남 구간의 통행량이 늘어난 2016년에는 외곽순환 남부구간 전체에서 가장 적은 통행량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그래프를 통해 드러난다. 이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잠깐의 여유는, 첨탑을 머리에 꽂은 채 여행자를 맞이하는 수리산(489m), 그리고 길게 막혀 있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차량 행렬과 함께 끝난다.

해발 고도가 거의 500m에 달하는 수리산은, 일산에서 출발한 여행자가 처음으로 보는 산 다운 산이다. 자못 위세가 당당한 이 산은, 1951년 1월 말 개시해 평택-삼척선에서 한강까지 전선을 밀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썬더볼트 작전(Operation Thunderbolt)의 서두를 장식한 전적지가 되었던 역사가 있다. 이 산의 동편으로는 안양 지역의 경부선 철도와 1번 국도가, 서편으로는 이후 “수인산업도로”이자 42번 국도가 된 인천 방면의 도로가 있기 때문에,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는 이 산을 영등포 일대를 감제할 수 있는 관악산에 앞서 장악해야 하는 서울 진입의 주요 길목으로 지목했던 모양이다. 미 제 25보병사단은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치열한 산악전을 통해 이 산을 수비하고 있던 중국 149사단을 격퇴시켰다.[8] 당시 미 25사단장 킨(William B. Kean)은 수리산을 방어중이던 적을 보병을 투입하여 우선 격멸하고, 그 다음 기갑부대로 주변 도로를 기동하면서 주변의 야트막한 구릉을 방어하는 적을 파괴하는 작전계획을 짰다.[9] 이 가운데 외곽순환을 타고 우리가 접근하고 있는 서측 산록은 본래 터키여단이 담당했던 구역이지만, 이들은 적의 완강한 저항을 꺾지 못했고 이는 수리산을 정면에서 공격하던 미 35연대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이 지역이 미측의 통제에 들어가게 된 것은 미 27연대 3대대가 임무를 교대하여 투입된 다음의 일이었다. 수리산 전투의 결과는 이후 선더볼트 작전의 성공에, 그리고 중국군이 서울을 버리고 후퇴(51.03.15)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미 25사단을 고전시킨 수리산 서측에 가까이 다가가면, 직경 20m에 달하는 거대한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자를 처음 맞이하는 광폭 터널의 위용이다. 이미 4장에서 지적했듯, 90년대 당시 발전된 토목 기술이 아니었다면 이 터널 역시 앞서 만난 소래터널처럼 두 개 차선씩 네 쌍으로 이뤄진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수암터널, 수리산교, 그리고 수리터널이 연달아 위치한 덕분에, 차창 밖으로는 중앙고속도로와 같이 산악 지역 어딘가를 달리는 고속도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수리터널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방음벽이 고속도로를 에워싸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 따라 약 500m만 진행하면 산본 나들목이다. 산본 나들목의 출입로는 곧바로 산본 신도시의 간선도로와 통한다. 신도시의 아파트들은 고속도로 턱밑까지 들어차 있고, 고속도로 자체의 높이나 방음벽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내밀고 여행자를 쳐다보고 있다.

물론 산본 나들목을 막 지난 구간에서 더 인상적인 풍경은, 차창 앞에 펼쳐진 모습일 것이다. 관악산을 배경으로, 수많은 판상형 아파트와 사이사이에 보이는 몇몇 오피스 빌딩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평촌 신도시의 모습이다. 도시의 모습을 쫒아 수백m를 더 달리면, 방음벽이 사라진 구간이 나온다(113.2km 지점). 도로 아래로, 좌측에는 안양 구시가, 정면에는 평촌, 우측에는 산본과 군포 구시가, 그리고 뒤편에는 수리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커브 덕분에, 지나온 도로가 얼마나 높은 고가였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40m 상공에서 주변 시가지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풍경, 이 구도는 외곽순환 전체를 통틀어 보더라도 단연 압도적이다. 비록 이렇게 방음벽에서 자유로운 구간이 생겨난 것이 도로공사의 의도는 아니었지만[10], 안양고가의 이 지점은 외곽순환이라는 이 도로와 동시에 일어난 수도권의 변화가 어떤 규모였는지 확인하는 데 그 어느 지점보다 훌륭한 장소다.